가난한 나라의 대명사, 우리에게는 아덴만 해적 소탕 작전으로 잘 알려진 소말리아는 어쩌다 해적이 판치는 나라가 되었을까요?
영화 '블랙호크다운', '모가디슈'의 배경이 되었던 나라 소말라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테러와 내전이 끊이지 않는 나라
소말리아는 내전이 끊이지 않아서 치안과 행정, 경제가 무너진 나라 입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소말리아를 여행금지 또는 최고 수준의 여행경보를 내린 상황이고 우리나라 역시 소말리아 여행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유는 치안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안되어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납치가 빈번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전 뿐만 아니라 테러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민간인이 도저히 살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피해자
수에즈운하와 연결된 마지막 관문으로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길목에 위치한 소말리아는 선박 교역의 요충지였습니다. 이 덕분에 고대에는 유향과 향신료, 상아등을 이집트, 그리스 등 국가에 공급하는 상업이 발달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위치때문에 제국주의 국가들의 타겟이 되었습니다.
19세기 말 독일과 영국, 프랑스 같은 강대국들이 아프리카를 차치하려고 식민지 쟁탈 경쟁이 과열되었고 소말리아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강제로 찢겨진 아프리카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기들끼리 식민지 영토분쟁을 하다가 협상을 통해 아프리카를 나눠갖기로 하는데요 이 협상이 바로 1884년 '베를린 회의' 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아프리카 땅의 주인이던 원주민들의 입장은 배제하고 자기들끼리 지도를 보며 자로 그어 나눠가졌다는건데요. 이것이 바로 아프리카땅이 직선으로 영토가 나누어진 이유입니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내전으로 몸살을 앓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데요. 대충 선을 그어 국가를 나누다 보니 한 국가내에서도 서로 부족이 갈려 나가는 일이 발생합니다. 소말리아도 그런 이유로 부족이 남부는 이탈리아, 북부는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게 나누어져 이는 끊임없는 내전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 불었던 독립만세운동
1918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합니다.
민족자결주의는 '각 민족이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고, 다른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 민족자결주의가 아프리카에도 퍼지게 되었고 1960년을 전후로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말리아 역시 1960년에 독립을 하였습니다.
쿠데타로 시작된 비극
1960년 독립을 한 소말리아의 평화는 채 10년이 가지 못했습니다. 1969년 시아드 바레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대통령 샤르마르케를 암살하고 소말리아 제 3대 대통령이 됩니다. 시아드 대통령은 출범초기 소말리아의 부족간의 갈등을 없애고 하나의 소말리아를 만들겠다고 했으나 이는 그냥 말뿐으로 자신의 원래 부족에게 요직을 몰아주고 다른 부족의 재산을 몰수하는등 다른 부족들을 탄압했습니다.
소말리아 몰락의 시발점 오가덴 침공
시아드 바레 대통령은 1977년 대형 사고를 치게됩니다. 바로 소말리아 인접국가인 에티오피아의 오가덴을 침공합니다. 오가덴에는 과거 소말리아계 주민이 다수 살고 있었는데요. 소말리아족이 사는 곳을 통합하겠다는 명분아래 오가덴을 침공하게 된것입니다. 전쟁 초기에는 소말리아가 우세했으나 소련의 대대적인 에티오피아 지원으로 갈수록 기세가 꺽여 결국 소말리아는 참패하고 말았습니다.
전쟁터가 된 수도 모다디슈
전쟁의 참패는 참혹했습니다. 막대한 사망자가 발생했고 경제와 농업이 붕괴되면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시아드 바레 정권의 독재는 계속되었고 반대 부족까지 무참히 살해하는등 악행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하였고 그동안 탄압받았던 여러부족들이 연합하여 반정부 단체 '통일소말리아회의'가 결성되었습니다. 이런 시위를 통해 마침내 1991년 반정부 단체는 시아드 바레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끝나지 않은 내전
독재정권은 사라졌으나 반정부 단체는 애초에 여러 부족의 연합이었습니다. 하나의 공통 목적을 위해 임시 결성되었던 단체였던것으로 목표를 이루자 바로 여러 분파로 분열되었습니다. 바로 소말리아 내전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던것입니다.
독재정권을 끝내고 임시대통령이 되었던 모하메드와 5대 대통령 아이디드의 대립이 생겼습니다. 거기에 수많은 부족 중심 군벌들이 내전을 계속 일으켰는데 이 와중에 가뭄으로 인한 대기근까지 겹쳐 소말리아는 정말 지옥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를 타개하고자 유엔이 개입하게 되었는데요 아이디드는 이런 유엔군과 미군을 공격했습니다. 그 유명한 영화 블랙호크다운의 배경이 되었던 시기 입니다. 미군이 소말리아에서 큰 피해를 입게 되자 미국에서는 반전여론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미군은 소말리아에서 철수했고 1995년 유엔군마저 완전히 철수를 하게 됩니다.
해적밖에 할 수 없는 현실
미군과 유엔군이 철수하자 소말리아는 실질적으로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경제와 농업 모든것이 무너지고 내전만 남은 국가에서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것은 어쩔 수 없이 바다였습니다. 처음부터 소말리아가 해적이 되기로 했던것은 아니었습니다. 국가 대부분이 사막지대였던 소말리아는 어업이 주 생계였는데 정부가 무너지고 해군이 없어지자 외국 선박들이 불법조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소말리아 어부들은 자체적으로 총을들고 해상경비를 했으나 이마저도 소용없게 된것이 바로 정부의 부정부패였습니다. 소말리아 정부는 외국의 폐기물을 아주 싼값에 수입했고 서방의 많은 나라들이 소말리아 해역에 쓰레기와 핵폐기물까지 버리기 시작하면서 소말리아의 바다는 죽어갔습니다.
이에 국민들이 택한것은 해적질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장래희망 '해적'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항로는 소말리아를 거쳐 가야만 했습니다. 이를 노려 소말리아에서는 선박을 납치하는 일이 빈번했는데요. 2011년 해적들은 선박을 납치해 몸값으로 벌어들인 돈이 무려 1억3천500만 달러에 이르렀는데요 이는 당시 소말리아 푼틀란드주의 한 해 총예산 1,760만달러 였던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피랍된 선언을 구출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 였습니다. 해적들이 이렇게 막대한 수익을 얻게 되자 소말리아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해적이 되었던것도 당연합니다.
소말리아의 평화는 찾아올까?
다행히 2012년부터 정식정부가 들어선 소말리아는 점차 치안과 경제가 나아지고 있습니다. 최고점을 이르렀던 해적질도 2011년부터 여러 나라에서 자국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군함을 보내면서 해적들의 납치는 성공을 못하게 되고 드디어 2021년부터는 단 한건의 납치와 몸값 요구도 성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 평화가 온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소말리아 정권을 인정하지 않는 군벌과 정부사이에 내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없는 아프리카가 어서 찾아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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