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 쿠테타가 일어났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미얀마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난 4월 12일 미얀마 임시정부 행사장에 공습으로 인해 168명이 숨졌습니다. 미얀마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독재에 시달리고 있는 것 일까요?
먼저 미얀마라는 국가를 알아보겠습니다
아시아의 쌀독으로 불리던 미얀마
미얀마는 가난한 나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미얀마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입니다. 전자제품을 만들때 꼭 필요한 소재인 희토류와 천연가스, 석유등이 많이 매장되어 있고 1960년대까지 세계1위ㅣ 쌀 수출국으로 아시아의 쌀독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이렇듯 한국보다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던 미얀마가 가난해진 이유는 먼저 긴 군부독재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배
미얀마는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배시절을 거쳤습니다. 1824년에 영국은 미얀마 지역에 점차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식민지배를 시작했습니다. 1886년에는 영국의 인도 제국에 속하게 되면서 미얀마는 영국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영국 식민지배시절 동안 미얀마는 영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일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은 미얀마에서 원유, 나무, 고무 등의 자원을 채취하였고, 미얀마는 농업 생산물과 금광 산업 등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영국의 수요를 충족시켰습니다.
또한 영국은 미얀마에 대한 교육 제도를 만들었고, 기술적 발전을 촉진하며, 수도인 양곤에서는 현대적인 건축물들을 건설하여 미얀마의 도시화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미얀마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얀마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얀마의 식민지배시절은 미얀마 국민들의 독립 욕구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48년 미얀마는 영국으로부터 '버마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미얀마는 다양한 내전과 군사정권 등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힘들었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 민주화 시위 8888혁명
독립은 하였으나 미얀마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1962년 독립운동가이자, 국방부 장관이었던 네 윈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26년간 군부독재를 하였던것이지요. 이로인해 경제는 쇠락의 길을 걷고 소수민족들을 탄압하는등 독재자의 횡포로 국민들은 힘들었습니다. 당연히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마침내 미얀마의 8888혁명이라 불리던 1988년 8월 8일 장기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가 대규모로 일어나게 됩니다.
아웅산 수치 여사의 가택연금
8888혁명은 평화적인 시위로 시작되었지만 군부의 진압으로 수천명의 시민이 사살되었습니다. 당시 군부독재의 반대편에 있던 신군부 세력의 소마웅 장군을 중심으로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시민 3천여명이 사망하고 만여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이 무렵 나타난 미얀마의 정신적지주 아웅산 수치 여사가 등장합니다. 수치 여사는 미얀마의 독립영웅 아웅 산의 딸이었는데요. 미얀마 시민은 수치여사를 중심으로 1990년 자유 총선을 치르면서 아웅산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이 상하원 전체 485석 가운데 392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지만 쿠데타를 일으켰던 군부는 선거 결과를 부정선거라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민주주의 운동의 중심이었던 아웅산 수치 여사를 15년간 가택연금하게 됩니다.
승려들의 샤프란 혁명
장기 군부독재가 이어지던 2007년 또 한 번의 큰 사건이 벌어지는데요. 바로 '샤프란 혁명' 입니다. 군부독재정권은 예고없이 천연가스 가격을 5배나 인상하면서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미얀마인들의 존경을 받던 승려 4명이 구속되었고 이들의 석방을 군부가 거부하면서 이는 승려들의 시위참가를 하게 만드는 커다란 파장을 일으킵니다. 이 때 미얀마 승려들이 입었던 샤프란 색의 옷에서 비롯된것이 바로 '샤프란 혁명' 입니다
53년 만에 막을 내린 군부독재
미얀마는 1988년, 2007년 두번의 대규모 시위를 벌였으나 민주주의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군부독재는 2015년 국제사회의 압박에 다시 총선을 하게 되는데요 이 때 아웅산 수치의 민주주의민족동맹이 491석 중 390석을 차지하면서 또 다시 압승을 하게 됩니다. 드디어 군부독재가 막을 내린것이지요. 하지만 군부독재는 곱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군부정권에서 제정되었던 헌법에 따라 국방부와 내무부, 국경경비대 등 주요 3개 부처 장관 지명권이 군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 아웅 산 수치 여사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하여 외국인과 결혼했거나 자녀를 둔 사람은 대통령에 출마를 못하게 막았습니다. 수치 여사는 영국인과 결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던 수치 여사가 대통령이 아닌 외교부 장관, 국가고문등의 위치에 밖에 오르지 못한 이유입니다.
또 다시 일어난 군부쿠데타
민주주의민족동맹은 2020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이때부터 미얀마의 민주주의 역사는 거꾸로 가게 됩니다. 군부가 또 다시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2021년 2월 1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수치 고문과 정치인들을 대거 구금하고 1년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됩니다. 국가 비상사태가 일어나면 자동으로 군부가 대통령 권력을 이양받게 되어있는 미얀마 헌법을 이용해 당시 미얀마군 최고사령관이던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이 정권을 잡게됩니다. 이 군부독재는 2023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왜 다른 국가들은 미얀마를 방치하는가?
유엔과 미국은 미얀마 군부를 규탄하기는 했습니다. 미국은 미얀마의 민주화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버마 법'이 포함된 국방수권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고 군부독제정권에 대해 수출제한과 자산동결 조치등을 취했으나 미얀마 군부기업은 미국과 거래거 많지않고 해외자산도 별로 없어 별 효과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유엔도 2022년 2월 미얀마의 민주화를 돕기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하겠다고 밝히고 미얀마에 대한 무기수출을 금지하도록 촉구하였으나 문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미얀마에 무기를 수출했습니다.
미얀마에는 자유의 바람이 불 수 있을까?
2021년 1년간 선언되었던 국가 비상사태는 최장 2년까지 가능하도록 되어있던 헌법으로 인해 2023년 2월까지 연장되었으나 군부는 또 다시 특수한 상황을 내세우면서 6개월 연기했습니다. 그래서 올 8월로 예정되어있던 총선은 또 다시 불투명해진 상태 입니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지를 받던 미얀마의 군부독재세력은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중국만이 우호 세력으로 남았습니다만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 입니다
정말 중국 정부의 말 대로 "결국 미얀마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것' 일까요?
미얀마의 민주주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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