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2일, 이란의 소식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히잡시위에 참가했던 23살 청년을 건설용 크레인에 매달아 고통스럽게 공개 처형되었 것 이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그날 이란의 프로축구 선수 '아미르 나스르 아자다니'가 히잡시위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사셩선고를 받았다는 놀라운 소식까지 있었죠
이 밖에도 스물한 살 청년이 시위참가대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주었다고 사형위기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반정부 시위를 하면 사형을 시켜버리겠다는 그야말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나라 이란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겠습니다
히잡 거부 반정부 시위의 시작
2022년 9월,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 머리카락이 보였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어 조사를 받다가 쓰러졌는데요, 이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혼수상태에 빠졌고 삼일만에 사망하였습니다. 심장마비라는 경찰의 발표와 달리 유족은 경찰 구타로 사망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란 민심이 폭발하였습니다
이 시위는 아직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요 다행히도 사형선고가 내려졌던 축구선수는 사형을 면했으나 징역 26년에 처해졌습니다
대화와 타협없는 강경진압
이런 반 정부 시위에 이런정부는 실탄으로 무장한 병력을 도시 곳곳에 투입하는등 강경진압을 선택했습니다. 시위는 3개월 이상 계속되어 전 세계가 월드컵 열기로 뜨거울때 이란 대표팀의 16강 탈락을 환호하던 한 남성이 보안군 총에 사살되기도 하는등 이란 정부의 시민 탄압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란 인권 단체에 따르면 시위 가담자의 1만 8천 여명이 체포 되었고 그 중 40여명은 사형선고를 받았거나 사형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진압 과정에서 약 470명이 사명했고 그 중 미성년자 또한 60여 명에 이른다고 전했습니다
도대체 히잡이 뭐야?
히잡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교도의 여성들이 천으로 신체 일부를 가리는 옷차림을 말합니다. 이는 또 가림 정도에 따라 히잡, 차도르, 니캅, 부르카 등으로 다르게 불리는데요. 원래 이 의상의 의도는 중동의 뜨거운 태양과 모래바람으로 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이슬람의 종교적 이유가 더해지면서 지금은 강제 조항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은 시대적상황이 변하면서 다수의 이슬람 국가들도 히잡 착용을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히잡이 필수인 이슬람 국가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이란, 그리고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으로 히잡이나 부르카를 강제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사우디는 2017년 빈살만 왕세자가 국정을 총괄하면서 여성들의 인기를 얻기위해 복장을 완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탄압하는 이란
시대를 역행하듯 이란은 최근들어 더 강경하게 히잡을 규제했습니다. 2022년 8월, 이란의 제13대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는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박탈하는 새 법령에 서명까지 하였습니다.심지어 안면인식 기술까지 도입하여 히잡 단속을 하고 적발시에는 최대 1년간 사회적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란의 서구화 열망
1920년대 1차 세계 대전 이후 권력을 잡았던 레자 샤 팔라비는 이란의 서구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는 1936년 근대화를 위한 개혁안으로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카슈페 헤잡을 선포했습니다. 선포와 동시에 왕비와 공주들까지 히잡 없이 사람들 앞에 등장하는등 파격적으로 히잡 금지 운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혼란스러워진 이란
카슈페 헤잡은 지금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이슬람권 국가의 파격적인 히잡금지 였는데 문제는 이란이 뿌리 깊은 이슬람 중심 사회였습니다. 당연히 종교 지도자들은 극대노 반발을 했고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들을 구타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여성들 입장에서도 난감했는데요, 평생 해왔던 히잡을 벗어던지기는 쉽지 않았고 법을 안지키면 경찰에게 제지당하고 그렇다고 히잡을 착용하면 무슬림 신자들에게 손가락질과 구타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1941년 팔라비가 퇴위하면서 히잡금지령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중동의 패션리더가 되었던 이란
팔라비의 뒤를 이어 아들인 모하마드 레자가 통치를 시작하면서 히잡금지령은 사라졌지만 대를 이어 친 서방 정책을 펼쳤는데요, 당연히 히잡은 친서방 정책에 장애물로 여겨 다시 히잡문화를 없애려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바로 여성들의 권리를 법으로 제정했던 '백색혁명' 이었는데요 이는 1961년부터 1978년까지 이란의 근대화와 서구화를 제창했던 광범위한 개혁 정책 이었습니다. 강력하게 밀고 나갔던 정책 덕분에 이란에는 드디어 미니스커트 같은 자유로운 복장과 헤어스타일도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란은 '중동의 패션리더'로 불리울 정도였습니다.
1차 오일쇼크를 통한 이란의 성장
이란이 친서방 근대화 정책을 펼쳐나가던 1970년대에는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합니다. 이를 통해 산유국이었던 이란도 경제적 이득을 보게 되면서 팔라비 왕조의 근대 사회화는 안착하는듯 보였습니다만 이런 서구적인 국가 정책을 반대하는 보수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및 이슬람 신도 시민들과 정면 충돌했습니다. 오일쇼크로 벌어들인 막대한 오일머니를 국민들에게 배분하지 않고 왕실 세력들과 일부 기득권 세력이 독차지 하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졌는데요 이때문에 1978년 12월 분노에찬 시민 200여만명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기 시작했고 1979년 1월, 국왕 팔라비가 미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탄생
국왕 팔라비가 망명하고 다음달 2월 시위의 주축이었던 종교 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란의 왕조를 없애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탄생시켰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이란의 뿌리가 되었던 이슬람 혁명입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란은 종교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가지는 신정체제가 마련되었습니다. 이제는 서방정책이 아닌 이슬람 율법에 따라 국가 운영을 하고 반미, 반 서방 정책으로 돌아서게 된것이죠. 이란은 다시 강한 이슬람 정책으로인해 여자는 9살부터 히잡 착용을 의무화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2005년에는 이슬람 풍속 위반 행위를 단속하는 도덕 경찰을 신설해서 이란여성들을 억압했습니다.
10대와 20대 젊은 여성들의 시위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 SNS를 통해 세계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된 이란의 젊은 층은 히잡 문화를 반대했습니다. 이슬람혁명이 불러온 결과가 어떤 것인지도 강하게 느꼈지요. 이 때문에 정부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었고 시위에 참여했던 17세 소녀 니카가 실종 10일 만에 별사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터지면서 반 정부 시위는 커져만 갔습니다. 이란 정부는 니카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발표로 시위에 불을 지르기 까지 했습니다. 이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는데요, 히잡착용을 반대하는 시위를 넘어서 이슬람 공화국의 종식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로 확대 되었던 것입니다.
이란정부의 강경한 대응
하지만 이란정부는 꿈쩍하지 않고 이 반정부 시위를 폭동과 분란으로 규정하는등 무자비한 탄압을 하고 있습니다. 시위대를 향해 총기 사용까지 하고 있는데요 여성들을 향해서는 얼굴과 가슴, 성기를 노리고 남성들을 향해서는 눈을 조준 사격하는등의 공포심 조성까지 하였다는 의혹까지 제기 되었습니다.
이란 반정부 시위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독재자에게 죽음을" 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연일 시위를 했고 이제는 운동선수, 배우, 기업인들의 지지까지 이어졌습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 국가제창을 거부하는 등 히잡시위를 지지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이란정부와 반정부 시위대의 대치 과연 이란에도 민주화의 봄이 오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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